빈, 새벽 여섯 시가 막 지난 시각. 미하엘러플라츠에 한 남자가 죽어 있다. 잿빛 분을 바른 피부, 하늘을 향해 뻗은 팔. 폴리스라인 뒤에 한 한국인 지휘자가 서 있다. 그녀는 그 장면이 무엇인지 즉시 알아본다. 그리고 그 안의 오류도 알아본다.
박서연은 서른한 살, 6년 동안 모차르트를 공부하고 연주하고 지휘해왔다. 미하엘러플라츠에 세워진 것은 〈돈 조반니〉의 기사장이다. 무언가 맞지 않는다. 경찰이 알아챌 만큼은 아니다. 그러나 서연이 알아채기에는 충분하다. 이것을 연출한 사람은 모차르트를 아주 잘 안다. 그리고 실수를 했다. 아니면, 일부러 남겼다.
죽은 남자는 음악학자였다. 이틀 뒤 또 한 사람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역시 인용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처음에는 정신이 무너진 자의 소행처럼 보이던 것이, 훨씬 정밀한 무언가로 드러난다. 살인에는 순서가 있고, 각 사건에는 모차르트를 진짜로 아는 사람만이 알아볼 세부가 하나씩 숨어 있다. 피해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알고 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이 무엇과 연결되어 있었는가다.
서연의 추적은 모차르트의 유산을 둘러싼 독특한 세계로 이어진다. 수집가와 연구자, 문서고, 오래된 가문들, 기관들. 그리고 특정한 하나의 역사 서술이 유지되는 데 생계가 달려 있는 사람들.
그러다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을 발견한다. 한 장의 문서. 하나의 필적. 어긋남 하나. 아주 작은 것이다. 그러나 한번 눈에 들어오면, 그 뒤로는 어디에서나 보인다.
모차르트의 이야기는 누구나 안다. 신동, 유럽 순회, 궁정들, 거의 초자연적으로 보였던 천재. 서연이 발견한 것은 그것을 반박하지 않는다. 다만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에 관해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의 많은 부분이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가 남긴 기록을 통해 전해졌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아버지이자 스승이자 매니저였고, 제 아이들을 지치지 않고 홍보한 사람. 그리고 그 상(像)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이해관계가 있던 사람.
그리고 18세기의 잘츠부르크는 오늘날 세계가 아는 그 잘츠부르크가 아직 아니었다. 대주교에게는 놀랄 만큼 현대적으로 들리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작은 도시를 중요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가.
그 답이 어쩌면 신동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문서의 출처는 서연을 잘츠부르크가 아니라 서울로, 어느 개인 소장가에게로 이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한 여자에게로. 열한 살의 그녀를 발견하고 그녀의 삶을 세워준 사람, 그녀의 스승이다. 1980년대에 빈에서 공부했고, 아시아 여자가 지휘대에 서는 일이 아직 예외로 취급되던 음악계를 기억하는 사람.
어린 시절부터 그 여자는 서연에게 그 빈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연에게 한 번도 이상하게 느껴진 적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어린 시절에 들은 이야기는 아무도 검증하지 않으니까.
그중 하나는 사실이 아니다.
영화는 누가 사람들을 모차르트의 인물로 만들어 죽이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우리가 역사라고 여기는 그 판본을 누가 썼는가라는 질문이 된다. 마지막에는 편안한 답이 없는 세 번째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무언가가 참이라는 것을 대체 어떻게 아는가.
문서는 위조할 수 있다. 이미지는 만들어낼 수 있다. 이야기는 누가 지어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때까지 반복할 수 있다. 한 번의 무대가 사람을 신화로 만들고, 신화는 언젠가 역사가 된다. 18세기가 갑자기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이 영화는 모차르트가 살지 않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하나의 가능성을 재구성할 뿐이다. 관객이 어느 순간 스스로 계산을 시작할 만큼 정밀하게. 마지막에 살인은 밝혀진다. 다른 질문은 밝혀지지 않는다.
그녀는 역사의 수수께끼를 푸는 수사관이 아니다. 음악가다. 그녀의 악기는 오케스트라이고, 그녀의 방법은 듣는 것이다. 아주 작은 차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음 하나, 한 프레이즈, 하나의 쉼, 그 자리에 속하지 않는 손 하나.
그리고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생을 바친 유럽의 신화 바깥에 조금 비켜서 있다. 그 신화의 기계장치가 보이는 것은 그 안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그 일부가 되었다.
마지막에 그녀는 자신이 찾아낸 것을 공개할지 결정해야 한다. 모차르트 신화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지휘자는 클래식계에서 설 자리를 잃을 위험을 감수한다. 오케스트라도, 페스티벌도, 쉽게 돌아갈 길도 없다. 그녀가 거는 것은 감정이 아니다. 자신의 직업이다.
이 영화에서 오스트리아는 박물관이 아니고, 한국은 이국적인 대위선율이 아니다. 두 세계는 하나의 질문에서 만난다. 문화는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내는가. 오스트리아에는 모차르트가 있다. 한국에는 한국의 강력한 서사들이 있다. 양쪽 모두, 이야기가 그것을 시작한 사람보다 커졌을 때 어떤 힘을 갖게 되는지 알고 있다.
두 나라 사이를 오가는 서연의 여정은 영화가 유럽을 바깥에서, 그리고 한국을 안에서 바라보게 한다. 그녀가 듣고 자란 이야기는 모차르트라는 공적인 이야기의 사적인 짝이 된다.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물려준 두 개의 내력.
현재의 질문을 밑에 깔고 있는 시대 미스터리 스릴러. 설명하기보다 우아하고 명민하며 불편하게. 스릴러는 그 자체로 굴러간다. 그 아래의 생각은 나중에, 저절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