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TZLFILM
원제 Der Raxkönig.
원제 Der Raxkönig. 원제 Der Raxkönig.
Feature Fillm

원제 Der Raxkönig.

글을 거의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나무꾼이 산등성이에 터널을 뚫어, 분수령 너머로 목재를 물에 띄워 보낸다. 그리고 빈에 땔감을 대는 가장 중요한 공급자가 된다. ‘락스의 왕’은 실존 인물이었다. 오토카어 야네체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야기

18세기 말, 빈에는 땔나무가 모자란다. 손닿는 숲은 이미 다 베어냈고, 길은 나쁘고, 아직 남아 있는 나무는 아무도 꺼내올 수 없는 골짜기에 서 있다. 히르슈방과 나스발트 사이의 횔렌탈에는 원시림이 자란다.

불가능한 일을 해낸다는 소문이 앞서가는 두 형제가 있다. 요한게오르크 후브머다. 두 사람은 마리아첼 근처 미터바흐에서 결속력 강한 개신교 나무꾼들을 데려와 원시림을 개간하고, 물길로 목재를 골짜기까지 내려보낸다. 남겨진 것은 여자들과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이 가톨릭으로 세례받아 교구에 편입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교사 한 사람이다.

고되고, 조금도 낭만적이지 않은 이야기다. 남자들이 일하다 목숨을 잃고, 그 과정에서 당국은 죽은 사람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히르슈방의 광산 감독은 정산을 거부하고, 돈을 둘러싼 다툼은 옆구리에 박힌 칼로 끝난다. 황무지에서 자라난 것은 결국 하나의 사업 이상이다. 가톨릭 국가 한복판에 선 개신교 마을, 황제가 직접 손을 얹어야만 존속할 수 있는 마을이다.

그리고 제대로 글을 쓰지도 못하면서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긴 터널을 그샤이들 고개에 뚫게 한 남자가 있다. 비너노이슈타트에서부터는 운하가 목재를 빈까지 실어 나른다.

이 소재는 8부작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회차의 시놉시스가 준비되어 있다.

인물

  • 게오르크 후브머 — 나무꾼, 유송(流送) 책임자, 그리고 오늘날의 의미에서의 사업가. 무뚝뚝하고 고집스러우며,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은 채 기술적 재능을 지녔다.
  • 요한 후브머 — 형이자 동업자. 둘 중 조용한 쪽이다. 광산 감독과의 다툼에서 목숨을 잃는다.
  • 베르벨 — 요한의 미망인. 무덤 앞에서 게오르크는 이제부터 그녀가 요한의 자리에서 발언한다고 약속한다.
  • 히르슈방의 광산 감독 — 정산을 거부하고, 이 일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끝내 황제의 편지를 마주하게 된다.
  • 호요스 백작 — 이 지역의 영주이자 훗날의 동업자. 겨울을 나는 나무꾼들을 돕지만, 순전히 선의만은 아니다.
  • 교사 — 미터바흐에 남아 여자들과 아이들 곁에서 공동체를 지킨다.
  • 빈에서 온 감독관 — 감사관으로 왔다가 옹호자가 되어 돌아간다.

실화

게오르크 후브머는 1755년 4월 11일 다흐슈타인 아래 고자우에서, 비밀 개신교 집안의 다섯 자녀 중 하나로 태어났다. 열일곱에 학업을 마치지 못한 채 형 요한과 함께 고향을 떠나 발트피어텔과 외처, 룬츠암제 인근 헤렌알페에서 나무꾼으로 일했다. 1833년 3월 20일 나스발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1784년 형제는 최저가 입찰자로서 호요스 백작가의 숲에서 목탄용 목재를 반출하는 계약을 따냈다. 히르슈방 제철소의 연료였다. 두 사람은 고자우, 고이제른, 할슈타트, 미터바흐 출신의 다른 목재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데리고 오늘날의 힌터나스발트 일대에 정착했고, 나스바흐와 슈바르차에 목재 활강로와 저수 시설, 집재 시설을 세웠다.

비너노이슈타트 운하 착공이 시작된 1797년, 형제는 이미 이 물길을 통해 빠르게 커가는 수도에 절실히 필요한 땔나무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요한은 1799년에 세상을 떠났다. 게오르크가 요한 에른스트 호요스 백작의 동업자로서 약 125킬로미터에 걸친 운송을 조직할 수 있게 된 것은 1808년이 되어서였다. 1817년에는 프란츠 2세 황제로부터 트라이젠강의 독점 유송권까지 받았다.

1826년 후브머는 나스발트에 개신교 학교 겸 기도소를 세웠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는 고용주이자 의료 기금이자 연금이자 재판관이자 법률 대리인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나스발트의 아버지라 불렀다. 전성기에는 최대 400명의 산림 노동자가 그의 회사에서 일했다. 그의 마지막 사업은 이 지역 개신교도를 위한 묘지였고, 그곳에 처음 묻힌 사람이 그 자신이었다.

‘락스의 왕’이라는 이름은 그로부터 백 년 뒤 야네체크의 소설을 통해 붙었다. 그의 나무꾼들의 후손은 오늘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며, 해마다 한 번 나스발트에서 모인다.

비너노이슈타트 운하

이 운하는 원래 트리에스테까지 닿을 예정이었다. 1797년에 착공해 1803년부터 운영되었지만, 실제로는 비너노이슈타트 일대까지만 건설되었다. 종점은 빈 란트슈트라세의 항구 수역, 오늘날 슈타트파크와 힐튼 호텔, 빈미테가 서 있는 자리다. 거기서 락센부르크를 지나 오늘날 조차장이 있는 클레더링을 거쳐 남쪽으로 이어졌다.

빈 구간의 일부는 3구의 오베레·레히테·링케 반가세 아래를 지난다. RitzlFilm의 사무실이 바로 그 노선 위에 서 있다.

운송 거리의 약 절반 동안 장작은 프라인바흐와 나스바흐, 슈바르차와 케어바흐를 따라 그냥 떠내려갔다. 나머지 절반을 위해 전성기에는 거의 서른 척의 배가 운하를 오갔다.

그샤이들 터널

나스발트 주변의 숲을 다 베어낸 뒤, 후브머는 슈바르차와 이어지지 않는 뮈르츠강 유역으로 옮겨가야 했다. 그래서 1811년부터, 그리고 중단을 거쳐 1822년부터, 두 유역을 가르는 해발 1,134미터의 그샤이들 고개에 길이 430미터의 유송 터널을 발파해 뚫게 했다.

굴착은 양쪽에서 동시에 진행되었고, 두 갱도는 한가운데에서 만났다. 여러 개울의 물길을 터널로 돌림으로써 목재를 분수령 너머로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긴 터널이었고, 그것을 구상한 사람은 글을 읽고 쓰고 셈하는 것조차 거의 하지 못했다.

후브머의 터널은 지금은 묻혀 있다. 그의 손자가 뚫게 한 두 번째 터널(길이 760미터)의 일부와 그샤이들의 옛 유송 수로 흔적은 지금도 볼 수 있다. 나스발트에는 복원한 나무꾼 오두막에 기념 공간이 있고, 그가 세운 교회와 그가 살던 집도 남아 있다.

스태프 및 기본 정보

  • 각본 — 볼프강 G. 리츠베르거, 오토카어 야네체크의 소설 원작
  • 연출 — 볼프강 G. 리츠베르거
  • 드라마투르기 — 로베르트 부흐슈벤트너
  • 제작 — 엘리자베트 울-리츠베르거, RitzlFilm(빈)
  • 형식 — TV 영화 또는 시리즈, 8부작 구성안
  • 장르 — 시대극
  • 배경 시기 —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 배경 장소 — 횔렌탈, 나스발트, 히르슈방, 미터바흐, 그샤이들, 비너노이슈타트 운하, 빈
  • 진행 단계 — 개발 중